‘‘아, 하나님이 하시는군요.’
하나님이 찾아오셔야 사람의 영혼이 평안으로 바뀌는 거군요. 하나님을 만나는 게 먼저였어요.
어머니, 기억하시지요?
북촌 바닷가 둑방에 서서 하염없이 물살을 훑었던 그 겨울의 새벽을요.
조업을 나갔던 아버지의 배가 돌풍을 피해 북촌으로 찾아들다 포구 앞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에, 어부들은 해녀들을 풀어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찾아 나서도록 했지요. 겨울 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지만 저는 저 차디찬 바다 어디쯤에 옹송그리고 계실 아버지를 찾아 제 가난한 외투나마 덮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.
새벽 물속을 헤엄치던 해녀들은 간혹 둑방으로 올라와 말하더군요. 캄캄한 바닷길에서 시체를 찾는 게 섬뜩해서 더는 못하겠다고. 그 말에 저는 ‘우리 아버지인데’라고 생각하며 바닷속으로 직접 뛰어들고만 싶었습니다. 내가 무서웠던 건 아버지를 잃는 것이었을 뿐, 캄캄한 바닷길쯤은 얼마든지 쳐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.
그러나 희미하게 동터오던 그 새벽,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안은 채 속절없이 통곡해야만 했습니다. 해가 떠올라 추위는 분명 잦아들었음에도 이가 덜덜 떨리고 외투를 자꾸만 포개게 된 건 그때부터였어요. 어린 날 나의 놀이터였던 바다가 시커먼 죽음의 이미지로 채워진 것도, 평화롭던 나의 잠길이 두려움의 미로 속에 갇혀 버린 것도 아마 그날 이후 어디쯤부터였을 거예요.
어머니의 잠길은 어떠셨나요?
그 새벽을 함께 보낸 가족으로서 어리석은 질문이란 걸 너무도 잘 압니다. 어린 내가 잠 못 이룰 때 제주바다 시름겨운 어머니의 잠길이 어떠했을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니까요.
그래서 저는 그 2년 반 뒤에 기적처럼 찾아온 제 잠길 안의 평안을 맛보며 한시도 어머니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.
‘어떻게 해야 내 어머니의 잠길도 평안해질까?’
대학 졸업을 1년 앞둔 1992년 3월 중순, 기독학생회에서 하는 철야기도회에 나설 때도 그 생각뿐이었습니다. 밤새도록 기도와 찬양을 한다는 말에 무슨 기도를 그리 징하게 하냐며 거절해도 “딱 한 번만 가보면 좋겠다” 하는 후배의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나선 길이었어요.
버스에 오르고서도 마음엔 어머니 생각. 그러다 문득 제가 서 있던 자리 앞 좌석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께 눈이 머무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. 아직 쌀쌀한 삼월의 추위를 가리기엔 턱없이 얇고 남루한 그 분의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. 검은 눈동자 색깔이 하얗게 바래버린 할아버지의 눈빛 안에 담긴 인생의 허망함을 그 찰나에 나도 모르게 읽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.
“민초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투쟁에 동참하자”라는 학과 선배들의 권면을 따라 집회에 몇 번 나섰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.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목 놓아 외쳤던 그런 일들이 과연 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만한 도움이 되었나 돌아보게 되었지요. 물론 그런 일들이 다 헛되다는 뜻은 아닙니다.
다만 그 많은 몸부림이 할아버지의 눈빛과 어머니의 거친 잠길을 평안으로 바꾸어 놓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그 순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.
아…. 짧은 탄식이 나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.
‘그럼 누가 하지? 누가 어머니의 잠길을, 이 할아버지의 눈빛을 평안과 생명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지?’
그냥 맘속으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, 그때 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음성을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.
“내가 한다.”
푸념처럼 던진 질문에 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. 그랬기에 “내가 (그 일을) 한다”라는 답을 듣자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란 것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. 그건 정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내 생각도, 누군가의 설교를 듣다가 깨달아진 사실도 아니었으니까요. 저는 그 음성을 듣고 온 우주의 비밀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 인생에 대한 의문 하나가 풀렸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.
‘아, 하나님이 하시는군요.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사람의 영혼이 평안으로 바뀌는 거군요. 지치고 노곤한 사람의 눈빛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생명의 빛을 머금을 수 있군요. 하나님을 만나는 게 먼저였어요.’
어머니. 철야기도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, 저는 이미 그 버스 안에서 인생의 답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아버렸습니다. 그래서인지 나의 잠길을 하나님이 잠잠케 하셨듯 어머니의 잠길도 하나님께서 종내는 잠잠케 하시리라는 소망으로 제 가슴이 터질 듯했습니다.
어머니. 이 온 우주에 내게 단 한 분뿐인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.
† 말씀
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– (요한복음 14장 27절
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– 시편 23편 2절
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– 시편 42편 1절
† 기도
하나님, 세상이 주는 평안과 안식은 참된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. 공허와 혼돈뿐입니다. 지치고 힘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허락하소서. 주님만을 만남으로 참된 안식과 생명을 얻게 하소서.
† 적용과 결단
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당신! 그 경주 속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있습니까? 아니면 공허함만 느끼고 있습니까? 당신 인생의 답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. 주님만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인정하고 나아가십시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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